암호화폐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기자를 하나 알고 있어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얘기를 오랫동안 나누다보니 생각을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타이밍이 옴.
내가 체감한 비트코인과 매우 간략화된 버전의 기술적인 비유로 글을 써보고자 한다. 본격적인 기술에 대해선 이미 워낙 많은 글에서 다뤄졌기 때문에 또 다른 글을 싸는 의미가 없다.

첫인상

내가 비트코인을 처음 알고 채굴할지 여부를 고민한건 2012년 중순이다. 그때 디아블로3가 나오던 시기에 고민을 했던게 생생히 기억난다. 당시에 너무나 생소한 개념이었고 기술을 차마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또 액면가가 이정도로 치솟을 줄 그 누가 알았단 말인가? 결정적으로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해야 하는데 컴퓨터의 소중한 리소스를 채굴 따위에 쏟을 수 없었다.

레딧reddit에 비트코인으로 피자를 시켜먹는 사람이 한둘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관심을 좀 끈 정도. 이게 진짜 화폐가치가 있다고? 하지만 호기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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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경기 중계에 잡힌 화면. 당시 저 계좌로 많은 사람들이 (재미로) 코인을 보내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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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10000개로 피자 두판을 시켜먹고 자랑을 했다. 이렇게 액면가가 뛸 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본격적인 현금거래, 바이두

2013년이 되자 비트코인을 본격적으로 현금거래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암암리에 액면가를 가진 화폐로써 역할을 하기 시작한 비트코인을 중국의 구글 바이두가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그 위상을 떨친다. 2013년 10월 경.

2013년 말에는 1코인당 1000불 가까이 되는 가치를 가진다. 이 무렵부터 각국 정부도 무시하지 못하게 됐을꺼고, 중국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다.

메리트

암호화폐를 화폐로 운용, 코인 지갑을 계좌로 사용하는데 있어 가장 큰 메리트는 이게 국제적인 무기명계좌라는 것이다. 여태까지 모든 거래내역은 모두에게 오픈이 돼있다. 다만 그 계좌가 누구의 것인지 (본인이 밝히지 않는 이상) 알 방법이 없기 때문에 메리트가 생기는 것이다.

이 특성은 몇가지 장점을 지니는데, 첫째로 돈의 흐름을 알지만 보내고 받는 주체를 특정할 수 없다는 것, 둘째로 주체를 특정할 수 없으니 국내/해외 수수료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어느나라에서 보내는지, 어느나라로 보내는지 기본적으로 관심이 없다.

이런 이점으로 국제적인 범죄 자금의 유용처로 쓰이기도 하고, 대규모의 돈세탁을 하기도 한다. 이런 용도로만 쓰인건 아니지만 검은 자금의 흐름이 지금의 암호화폐 위상을 만드는데 큰 작용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윤리적인 얘기는 하지 않기로 한다.

오픈소스와 포크

암호화폐의 많은 것이 오픈소스와 닮아있다. 이 얘기를 굳이 꺼내는 것은, 어떤 전문가(?)가 양적 완화와 통화량의 절대적 증가를 위해 하드포크를 이용하면 된다는 말을 한 것을 봤기 때문이다. 포크fork라는 개념은 오픈소스의 심장과도 같은 것으로, 공개된 소스코드를 그대로 가져와 새로운 제품의 시발점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포크된 프로젝트와 포크해서 시작한 새로운 프로젝트로 가지가 나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무수히 계속해서 가지가 생겨나게 되며, 그 무수한 가지에서 두개의 프로젝트가 합쳐진다든지 (merge), 더이상 개발을 포기한다든지 (abandonware)하며 가지치기가 진행이 되고 그 중에 시장의 선택을 받는 프로젝트가 오픈소스 개발자의 관심을 받으며 약진하게 되는, 적자생존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암호화폐의 포크도 이와 동일하다. 예를들어 비트코인을 하드포크해 만들어진 비트코인 캐쉬는 비트코인과는 완전히 다른, 아예 새로운 화폐로써 가지가 뻗어나가게 되는 것. 다만 포크할 당시 비트코인 소유권을 그대로 가져온다는 점이 유일하게 비트코인과 닿아있는 접점이다. 이는 금융권에서 생각하는 통화량의 절대적 증가와는 많은 차이가 있는 개념.

여담으로 그 전문가(?)가 세그윗이 최소거래 단위를 줄이는 방법이라 했었다. 세그윗은 한번에 소화할 수 있는 거래량transaction을 늘리거나 줄이는 역할을 하지, 최소거래 단위와는 상관이 없다. 비트코인의 최소단위는 1 사토시(0.00000001 BTC)로 정해져있다.

거래소의 역할

거래소의 역할은 간단하다. 암호화폐 자체는 각자의 지갑끼리의 송금 (화폐가 아닌, 코인으로)밖에 기능하지 못한다. 거래소는 그런 암호화폐를 액면가 + 수수료로 실물화폐와의 거래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창구인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가상의 물건과 현실의 돈을 사고팔게 해주는, 예를 들면 게임머니 거래소 같은 것이다.

거래소 해킹 사건

그 유명한 마운트곡스 해킹사건이다. 이건 워낙 유명해서 따로 설명은 하지 않는다. 최첨단을 달리는 비트코인도 거래소가 뚫리면 무용지물이라는걸 잘 보여준 사건.

채굴꾼과 컴퓨터 부품

암호화폐 채굴이 실질적으로 돈이 되던 시기에 수많은 마이너들이 몰렸다. 공산품이면서 '싯가'로 거래가 되는 컴퓨터 부품 가격이 (특히 메모리와 그래픽카드) 미친듯이 오르기 시작했고, 소비자들에게 마이너는 채굴꾼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전세계적인 품귀현상으로 발매된지 수년된 부품들이 두배가량 가격이 올랐다. 채굴을 하며 혹사된 부품들이 다시 중고시장에 풀리며 신제품은 구하지 못하고, 중고제품은 믿지 못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상황이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중.

여담이지만 이렇게 오른 메모리 가격은 삼성전자의 역대급 실적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채굴의 의미

그럼 그 마이너들이 채굴꾼이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하는 채굴은 뭘까? 간단히 말하면 은행이 해야하는 업무를 대신 해주는 대가로 코인을 지급받는 일이다. 기본적으로 비트코인은 이제까지 이루어진 모든 거래가 공개되어있다. 이 공개된 거래내역의 무결성을 지키고, 내가 1코인이 있는데 100개가 있다고 뻥을 치지 못하게 하는 용도로 해쉬라는 것이 사용되고, 채굴은 그 해쉬를 계산하고 대가를 받는 일을 칭한다.

물론 이 해쉬값을 모조리 위조해서 완전히 다른 내용의 거래내역을 만들어내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고, 그런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해쉬 계산 난이도를 조정하는 과정이 있다. 어려운 얘기지만 간단히 말하면 현재 기준으로 난공불락이라 불릴만하며, 위조지폐나 거래내역 사기 등의 문제가 없는 (현재로써) 매우 안전한 거래방식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 거래방식을 유지하고 거래내역 무결성을 지키기 위해 많은 컴퓨터 자원이 필요하고, 중앙 은행이 없는 암호화폐 특성상 그 자원을 마이너들에게서 끌어다 쓰며, 그 대가로 코인을 지급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지속성

내가 생각하는 암호화폐 지속성의 가장 큰 장애물은 채굴 난이도에 있다. 앞서 말했듯 난이도를 임의적으로 조절하는 모델이고, 그 난이도는 점점 더 높아지며 그에 상응한 대가는 점점 낮아지는 구조로 짜여있다. 지금은 산업전기로 공장형 채굴이 아직 타산성이 있는 단계지만, 점점 채굴로 돈을 벌 수 없게 된다.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

채굴 공장이 이익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라는거다. 코인 액면가의 끊임없는 상승. 같은 장비/전기료로 얻는 코인의 숫자가 점점 적어지니, 단위당 액면가 상승만이 이익을 현상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인거다. 어떤 이유에서건 채굴 공장이 더이상 수익을 내지 못한다면 채굴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위에서 설명한 은행의 일을 마이너에게 맡긴다는 모델이 성립되지 않는다. 암호화폐의 자랑인 블록체인 기술이 자신의 발목을 잡을 날이 언젠가 온다는 것이다.

안전자산

많은 투자회사들이 비트코인이 차세대 안전자산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마치 금을 대신할 수 있을 것 처럼. 긴 말을 할 가치가 없어 간략하게만 덧붙이기로 한다. 역사상 모든 암호는 언젠가 뚫렸다. 역사상 모든 연금술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중국의 채굴 금지 루머

거래소 문 닫게 하는게 문제라고? 오호... 천만의 말씀이다. 중국이 비트코인 채굴을 금지하는 방안을 모색중이다. 현재 암호화폐 시장에서의 중국의 위상은 대단하다. 단순 거래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암호화폐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채굴의 대다수가 중국의 채굴공장에서 이루어지기 때문. 중국의 채굴 금지는 아직 현실화된 것이 아니지만, 올해 초부터 많은 루머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중.

만약 이게 현실화가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 암호화폐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 다만 송금하고 컨펌하는데 몇시간이 걸릴지, 며칠이 걸릴지 모르게 될뿐.
  • 실사용을 목적으로한 통화로써의 가치는 상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상관관계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 기술을 헷갈려하는 사람이 많다. 단순하게 얘기하면 암호화폐의 위조 방지와 송금내역 무결성 유지를 위해 블록체인 기술이 쓰이는 것. 그러니 블록체인 때문에 암호화폐의 가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5만원권이 5만원의 가치를 지니는 것은 그 위에 인쇄된 위조방지 기술 때문이 아닌, 한국은행의 보증 때문인 것과 동일하게 생각하면 된다.

암호화폐를 사용해야 블록체인 기술이 발전한다! 글쎄. 두가지로 생각해보자.

  • 새롭고 더 안전한 블록체인 기술이 암호화폐 시장에 도입된다. 오. 그럴싸하다. 다만 문제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려면 새로운 코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는건 현재 존재하는 코인이 아니다. 0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코인이든 현재 코인을 포크해서 가지를 뻗어나온 코인이든, 어찌됐건 새로운 화폐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게 새로운 기술이 나올때마다 가지가 뻗어나간다... 생태계가 어떻게 될까?
  • 블록체인 기술이 현재 금융권에 적용된다. 오. 이건 나름 괜찮다. 분명 블록체인이 기술적으로는 상당히 괜찮은 기술이고 가능성이 많은 기술이다. 하지만 이건 암호화폐 거래와는 연관성이 없다. 땡.

블록체인 협회

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라는 곳이 있단다. 응원한다.
다만 기술을 대변했음 한다.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는 기술 탄압 같은게 아니다. 이익을 대변하지 말라.
블록체인 잘 키워서 금융권에 적용 시켜라. 그게 늬들이 원하는게 아니더냐?
선점효과만으로 너무 오랫동안 몇개의 업체만이 극혐인 기술로 금융권 보안 관련 계약을 따왔다. 이 협회는 아마 차세대 기술로 비슷한 포지션을 원하는 것이겠지. 지금 암호화폐에 편승해서 예산도 좀 따오고 불로소득에 가까운 계약도 좀 따내고 싶을 것이다. 지금 그들이 하는 일은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는다. 제발 쓸데없는데 참견하지 말고 본질에 집중하십쇼.

개인적인 생각

암호화폐의 기술을 이제와 논하는건 어불성설이다. 이미 기술의 영역을 벗어난지 오래. 지금은 기술이 아닌 돈 놓고 돈 먹기에 불과하다.

단순히 수요가 있기에 가격이 뛰는 구조에, 가격이 뛰는 변동폭을 막을 장치가 없다. 오를때는 그 단점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내려가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지는 다들 아실거라 믿는다.

거래소 폐쇄보다 중국의 채굴금지 루머가 수천배는 큰 사항이다.

개미가 유일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창구였다는 점에서 개인 투자자를 존중한다. 돈을 딴 사람이 있다면 축하한다. 다만 남에게 사탕발린 말을 하지는 말아줬음 한다.

어디선가 본 말로 글을 맺는다.
"내가 돈 벌었다고, 모르는 사람에게 너도 뛰어들어 돈 벌라고 하는 것, 이 세상에 다단계밖에 없다."